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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는 처음이라서] 삼십 년 동안

 나는 지금까지 삼십 년이 넘는 세월을 이곳 뉴욕 한인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왔다. 그동안 중앙일보는 나와 내 가족들에게 이민생활의 길라잡이가 되어주었고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처음 이민 와 모든 것이 서툴고 미숙했을 때는 이 신문을 통해 이민생활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휴대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때라서 한국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길도 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을 통해서였다.     매일 아침 신문을 펼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던 이민 초기에는 가장 먼저 확인하곤 하던 것은 이민 절차상의 가족 초청의 문호가 얼마만큼 풀려 있는지에 대한 이민정보였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면서 세월이 흘러 우리 아이들이 자라나고 대학에 들어갈 무렵이 되자 나의 관심사는 온통 대학입시에 관련된 정보들에 쏠리게 되었다. 그때 신문에 난 관련된 기사들을 스크랩해 모아둔 것이 책이 될만한 분량이었을 정도이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나도 어느덧 사회의 중견이 되었으며 신문을 받아서 읽기만 하던 데서 나아가 이민 생활의 애환들과 아이들 교육에 관한 의견, 내 사업장에서 생겼던 인종갈등의 문제 등에 대한 의견들을 써 오피니언 난에 보내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 오피니언의 공간은 나에게는 친정 같은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안에서 한 사회인으로, 한 명의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신문의 독자들은 처음부터 나의 모자람을 잘 알고 있을 것이어서 나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나무라기보다는 감싸 줄 것 같기 때문이다. ‘은퇴는 처음이라서’의 코너도 그러한 배경으로 쓰인 것이다. 나는 은퇴 전문가도 아니고 재정 설계사도 아니어서 이 분야에 무슨 전문적인 지식이나 남다른 식견이나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도 어느덧 은퇴를 준비해야 할 나이가 되면서 아직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을 바라볼 때마다 두려움과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끼면서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불안과 혼란 등을 정리해 보고자 했다.   은퇴와 노후라는 내 앞에 닥친 과제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나름대로 연구해 보았고, 노동의 시간에서 물러남의 시간으로의 내 인생의 축의 전환은 어떡해야 할지를 고민해 보았다.     이렇게 이 코너를 쓰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일 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이 일 년이란 시간은 내 삶에서 영원히 지나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의 시간 중 중요하지 않고, 빼버려도 되는 시간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 삶의 모든 여정이 그러하듯 이 과정들과 시간을 얼마나 충실히 살아왔는지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삼십 년도 전에 뉴욕시의 한 귀퉁이에서 가난한 이민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에게는 앞날에 대한 꿈들이 있었고,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그 꿈들과 믿음을 포기하거나 저 버린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 많은 부분이 나의 현실이 되어 주었음을 깨닫고 있다. 인생 후반부를 준비하는 것도 그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 또한 그것을 꿈꾸고 믿고 준비한 자들의 것인지도 모른다.   그 밝은 미래가 여러분 모두의 것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연재를 마치고자 한다. 이 글이 연재되고 있는 동안 나의 식견의 부족함과 치우침을 너무 나무라지 않고 좋게 읽어주신 독자들과 귀한 지면을 내어 준 중앙일보에 깊이 감사드린다. 위선재 / 웨스트체스터은퇴는 처음이라서 은퇴 전문가 이민 절차상 이민 초기

2021-12-06

[은퇴는 처음이라서] 이민자들이 미국을 내 나라라고 부를 때

 나는 지금까지 이 ‘은퇴는 처음이라서’의 코너를 빌려 은퇴 계획과 노후대책에 있어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사실은 미국 사회에서 이민자로 살아오며 은퇴를 스스로 계획하고 준비할 만큼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 몇이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나의 주장은 많은 사람에게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사회의 서민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경우라면 현재의 생활조차 빠듯할 것이니 노후 대책은 까마득한 경우가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문제는 개인이 각자 알아서 해결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지도 모른다. 그러니 국가가 나서서 대책을 마련하고 사회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을 위한 안전망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이민자로 이 나라에 와 살다가 이제 은퇴를 준비하고 노후를 마주하고 있는 분 중에는 미국의 사회복지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은퇴계획이고 노후 대책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비록 우리가 이민자로 이 나라에 왔다 하더라도 이 사회의 일원이 되어 살아왔다면 언젠가는 미국 정부가 주는 혜택과 도움도 받을 수 있는 권한과 지위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지위는 먼저 이민법상의 여러 절차를 거쳐서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었을 때 생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일정한 법적 지위를 갖추고 이 사회의 일원으로 오래 살아왔다 하더라도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와 나라에 대한 소속감과 주인의식이 없다면 늘 자기 집이 아니라 남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고 자신을 이방인으로 여기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자기가 일원이 되어 살아가고 있고 또 그 안에서 나이 들어 늙어가게 될 이 사회에 대한 진정한 소속감은 이 사회에 대한 각자의 참여와 기여와 공헌에 의해 생겨나는 것 같다. 즉 각자의 위치에서 이 사회가 움직이는 데 일조해 왔고 또 그것을 함께 만들어가고 이끌어 왔다고 느낄 때 이 사회에 대한 소속감이 생기게 될 것 같다.   미국에 대한 주인의식은 자신을 미국의 주인이라고 여기고 주인처럼 행동할 때 자라나는 것 같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이기에 이민자들은 누구나 이곳에서 이 나라의 시민이 되고 주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미국을 진정 자기의 나라라고 느낀다면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전에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자기 가족과 자기 집이라면 그것을 지키고 그것의 잘됨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을 것이니 자기의 나라를 위해서도 그것의 잘됨을 바라고 그것으로부터 하나라도 얻어 내려 하기보다는 하나라도 보태려고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마음이 바로 주인의식인 것 같다. 그리고 힘들게 일한 수확에 대한 일정한 부분을 아까워하지 않고 세금으로 내고, 누가 보지 않더라도 법을 지키며 살고, 자기와 생각과 말과 문화가 다른 사람들도 사회의 일원으로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일인 것 같다.   여기서 얼마나 오래 살아왔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마음과 자세를 갖추었을 때 미국은 우리에게 제2의 조국이 되어 줄 것이며 그때가 바로 우리 이민자들이 미국을 나의 나라라고 부르는 때인 것 같다. 위선재 / 웨스트체스터은퇴는 처음이라서 미국 이민자 우리 이민자들 사회복지 시스템 사회 저소득층

2021-11-17

[은퇴는 처음이라서] 저녁이 있는 삶에 이르는 길

 남편과 나는 몇 년 전부터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남편은 만약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사업체가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있었더라면 굳이 그것을 그만둠 없이 평생을 할 생각도 있다고 말하곤 한다. 우리 부부가 하는 일은 자영업이어서 거기에 정년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원한다면 그것에 평생 종사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아무 할 일이 없는 것보다는 소일거리를 가지면서 살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잘 자리가 잡힌 사업체에서 손을 떼는 것이 아쉬울 때도 잦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아온 것보다도 더 오랜 세월을 미국에서 살아왔으면서도 늘 미국을 쉼터라기보다는 일터라고 여겨 왔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생각이 묽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강해지고, 나이 들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러면서 남편은 이곳에서 이렇게 일만 하며 살다가는 일한 뒤의 편안한 쉼이 있는 저녁 시간을 놓치고 바로 어두운 밤으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두려워하고 경계해왔다. 그래서 쉼이 있는 저녁을 고향에서 맞는 일과 평생 일을 놓지 않는 것을 둘 다 할 수 없다면 그중 한 가지를 확실히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옛말에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삶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고, 뒷방에 나앉는 신세가 될 것이며 몸과 마음이 모두 무력해지고 병들고 시드는 늙음을 맞게 되는 것이 우리 모두에 닥칠 현실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늙음과 어둠이 닥치기 전에 쉼과 여유가 있는 저녁의 시간을 갖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부부가 이렇게 오랫동안 공들여 은퇴를 계획하는 이유이다.   옛날 농경사회였다면 기력이 다해 일손을 놓는 날이 은퇴의 시기였을 것이며 대가족들이 서로를 부양하는 것이 노후대책이었을 것이다. 만약 고향에서 쭉 살아온 경우였다면 은퇴는 일을 언제 그만두느냐 하는 문제로 귀착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온 우리 부부에게는 삶의 저녁 시간으로 이르는 길은 정밀한 계획과 과감한 선택을 통해서 찾아가고 확보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저녁이 있는 삶으로 가는 길은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게는 최고의 은퇴 대책은 평생 현역으로 남는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젊어서 폭풍처럼 일하다가 젊어서 은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한국보다는 미국이 더 낫고 이상적인 사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은퇴 후 오히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길은 운에 의해 어쩌다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주변 상황과 여건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결정돼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길은 각자의 노력과 선택과 집중 때문에찾아지는 것 같다.   우리가 인생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는 일이므로 스스로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그 나머지는 포기하는 것이 선택과 집중인지 모른다. 어느 한 가지를 확실하게 포기함으로써 다른 한 가지는 더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서 이 저녁의 시간은 그리 긴 기간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리고 곧 어두운 밤이 닥쳐올지 모른다. 위선재 / 웨스트체스터은퇴는 처음이라서 저녁 저녁 시간 은퇴 대책 우리 부부

202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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